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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담긴 좋은 문장들 모음

by Ho-Hott 2023.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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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책을 읽고 내용이 휘발해버리는 게 싫어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거창하게 독후감을 쓰고 싶진 않았고,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였던 혹은 생각을 하게 만든 문장들을 적었습니다.

그 중 지금 다시 읽어도 왜 기록했는지가 생생한 문장들을 추려봤습니다.

 

 

 

 

카메라 루시다

 

사진이 재현시키는 무수한 것들은 단 한 번 밖에 일어나지 않았던 현상이다.

즉 사진은 실존적으로 다시는 되풀이 될 수 없는 것을 기계적으로 재생시킨다.

 

 

시네필 다이어리

 

우리가 사랑하는 타자를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다는 오만과 결별하는 순간,

신기하게도 영원히 닫혀있을 것만 같았던 타자의 내면, 그 견고한 빗장은 열리기 시작한다.

무진장 어렵지만 의외로 쉬운 일이다. 우리가 짐작하는 그곳에 그가 항상 머물고 있다는 환상,

우리가 의도하는 그곳에 그녀가 얌전히 존재한다는 환상과 작별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후적 깨달음의 동물일까.

지나간 시간이, 과거의 기억이 ‘소중하다’는 감각은 기억이 생성된 후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지각된다.

특히 익숙하고 친밀한 관계일수록 대상의 상실은 더욱 오랜, ‘깨달음을 위한 발효기간’을 요구한다.

 

 

웃음의 과학

 

친구들 간에 서로의 약점을 공격하고 자기 자신을 비하함으로써 웃음을 주고받는 것은

상대방이나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러한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친한 사이라는 뜻이다.

공격적 유머는 친구 사이를 묶어주는 우정의 끈인 것이다.

 

 

끌림

 

떠나는 누군가를 붙잡기 위해 너무 오래 매달리다보면 내가 붙잡으려는 것이 누군가가 아니라, 대상이 아니라

과연 내가 붙잡을 수 있는가, 없는가의 게임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게임은 오기로 연장된다.

내가 버림받아서가 아니라 내가 잡을 수 없는 것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어 더 이를 악물고 붙잡는다.

사람은 가질 수 없는 것에 분노한다.

 

 

말테의 수기

 

화단에서는 군데군데 꽃이 눈을 떠, 깜짝 놀란 소리로 “빨강!”하고 외쳤다.

 

 

관계의 본심

 

칭찬을 해야 하는 지 판단이 서지 않더라도 칭찬을 아끼지 말라.

 

부정적 의견 제시 후 기억시키고자 하는 정보를 제시하는 게 효과적이다.

부정적 사건 이후 기억력이 향상되는 순행 증강 효과 때문인데,

부정적 의견을 제시한 후 칭찬하는 게 더 기억에 오래간다. 비판을 듣고 나면 그 전의 내용을 까먹기 때문이다.

 

목표가 쉬운 거라고 말하거나 정확하지 않은 걸로 칭찬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부른다.

 

닮아간다는 것은 가장 큰 아부다. 처음부터 비슷한 유형보다 성격이 자신과 닮아가는 것에 더 큰 이끌림이 생긴다.

 

동질감과 상호의존감은 팀의 결속력 강화에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스포츠에서 팀 티셔츠나 배지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유머는 집중력을 높인다.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며, 썰렁한 농담을 해도 인상이 나빠지지 않는 다.

 

‘전문가’라고 부르는 순간 ‘전문성’이 생겨난다.

 

내가 옳다고 해서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설득하고 싶다면 먼저 상호의존관계를 만들 어야 한다.

 

납득할 만한 이유든 엉뚱하고 이상한 이유든 이유를 덧붙이는 게 승낙을 받는 데 유리하다.

 

 

스틱

 

생텍쥐페리가 간결함에 대해 참으로 멋들어진 정의를 내린 적이 있다.

“완벽함이란 더 이상 보탤 것이 남아있지 않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게 없을 때 완성된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바로 ‘패턴을 파괴하는 것’이다.

인간이란 일관된 패턴에 기가 막힐 정도로 재빨리 적응하는 생물이다.

 

호기심은 지식의 공백을 느낄 때 발생한다.

 

 

생각의 탄생

 

리처드 파인만은 이보다 간결하게 적어놓고 있다. ‘현상은 복잡하다. 법칙은 단순하다. 버릴 게 무엇인지 알아내라.“

 

어떤 사물을 볼 때 ‘그것이 무엇인가’가 아닌 ‘그것이 무엇이 될까’에 착안해야만

우리는 사물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책은 도끼다

 

세월에 저항하면 주름이 생기고 세월을 받아들이면 연륜이 생긴다.

 

 

PD가 말하는 PD

 

코미디의 내용은 보편적이면서 경험적이어야 한다. 웃음의 타이밍을 면밀히 계산해야 하되, 그 계산은 철저히 숨겨야 한다.

코미디는 치밀한 기획과 준비를 통해 만들어진, 고도의 연출이 필요한 프로그램이지만 그 연출이 들키는 순간

코미디는 웃음의 포인트를 잃는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나보다.

 

어느 정도의 빈틈. 상대가 답답해하지 않을 정도의 빈틈은 필요했던 건데 나는 그걸 몰랐던 거다

 

 

유혹하는 글쓰기

 

글을 쓸 때는 문을 닫을 것, 글을 고칠 때는 문을 열어둘 것.

 

묘사는 작가의 상상력에서 시작되어 독자의 상상력으로 끝나야 한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감동은 공감을 전제로 한다.

공감하려면 감정이입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보는 것(또는 듣는 것)의 내용에 깊이 빠져들어야 한다.

강압적인 설득이 아니라 개입하고 싶도록 만드는 빈칸이 필요하다.

그것은 마치 앞에서 본 카니자 삼각형과 같은 문을 만들어주는 것과 같다.

카니자 삼각형은 사람들이 스스로 ‘개입해서’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스스로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고 확신하지 않는 경우에 타인의 애정을 받으면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모르면서 훈장을 받는 느낌이 든다.

 

 

사진 철학의 풍경들

 

사진은 찍는 순간 과거가 된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과거가 된 사진을 본다.

과거와 미래가, 삶과 죽음이 한 몸으로 붙어있는 시간의 죽음이 메멘토 모리다.

그곳, 거기에 있었다는 존재증명과 이곳, 여기에 없다는 부재 증명을 동시에 함축한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그러나 경험에는 원동력이란 것이 없다. 경험이란 양심과 마찬가지로 행동의 적극적인 동기가 될 수 없다.

경험이 보여주는 모든 것이란 실상 우리의 미래가 과거와 같을 것이라는 점.

우리가 한 때 저지른 죄악을 우리가 혐오하지만, 다시 기꺼이 반복하리라는 점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나는 헤어질 때, 그날 중으로 다시 만나달라고 간청했다. 그 순간에 태양과 달과 별들이 조용히 계속해서 돌고는 있었겠지만,

나는 그 때가 낮인지 밤인지를 가릴 수 없었다. 온 세계가 내 주위에서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자전거 여행

 

갈 때의 오르막이 올 때는 내리막이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비기면서,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탄하다.

그래서 자전거는 내리막을 그리워하지 않으면서도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 

 

겨울에는 봄의 길들을 떠올릴 수 없었고, 봄에는 겨울의 길들이 믿어지지 않는다.

 

 

캐릭터의 탄생

 

등장인물이 직면하는 최대의 시험은 두려움에 기인한다. 그래서 물에 대한 극도의 공포심을 가진 주인공이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연인을 구하려고 물로 뛰어드는 장면은 수영선수가 물로 뛰어드는 것보다

훨씬 더 짜릿하고 긴장감이 넘친다.

 

 

신화와 인생

 

현재의 형상에만 매달리면, 우리는 다음의 형상을 지니지 못하게 된다. 계란을 깨뜨리지 않고서 오믈렛을 만들 수 있겠는가.

 

여러분이 긍정적인 방식으로 경험하기를 거부하면, 결국 그것은 부정적인 방식으로 경험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자신의 삶의 어떠한 사소한 세부 사항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모든 것을 해체해 버리는 셈이 된다.

여러분은 반드시 모든 것에 대해, 심지어 그 소멸에 대해서도 “예”라고 말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의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

 

삶이란 항상 슬픔이 가득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삶을 바꿀 수는 없지만,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바꿀 수 있다.

 

 

눈 깜박할 사이

 

감정이 적절하고 이야기가 흥미로우며 알맞은 리듬으로 진행되면 관객은 하위에 있는 편집 상의 문제들

-눈의 궤적, 180도 선, 공간적 연속성 등의 문제들-은 인지하지 못하거나 개의치 않는 경향이 있다.

내가 제의하는 것은 우선순위이다. 뭔가를 포기해야 한다면, 결코 스토리보다 감정을 먼저 포기하지 마라.

 

 

바람을 담는 집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덧없이 지나가고 돌아오지 않는 매순간을 힘껏 사랑하리라 .

쉬 져버리는 풀꽃을 사랑하리라. 다시 만나지 못할 뒷모습을 사랑하리라.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모퉁이 도는 길가의 레코드 상점에서 언뜻 들은 한 소절의 멜로디,

다시는 반복하지 못할 그 순간의 감미로움처럼 사라져버리는 것들을 사랑하리라.

그 모든 순간들은 둥글다. 내 존재를 다하여 사랑한 순간들은 둥글다.

 

 

행복의 충격

 

그곳에서는 아직도, 행복은 습관이 아니라 충격이다. 행복은 이 땅 위에 태어난 우리의 하나 뿐인 의무다.

 

떠난다, 문을 연다, 깨어 일어난다, 라는 동사들 속에는 청춘이 지피는 불이 담겨있다. '다른 곳‘은 공간에 있어서의 미래다.

’다른 곳‘과 ’내일‘ 속에 담겨있는 측정할 길 없는 잠재력은 모든 젊은 가슴들을 뛰게 한다.

 

 

프로방스에 내리는 각종 햇빛의 감도,

 

부활절 무렵 애무하는 꽃물결처럼 피부를 간질이는 햇빛,

저녁나절 가벼운 바람에 실려 와서 당신의 목덜미를 쓸고 가며 벌써 저 앞에 걸어가는 처녀의 갈색 머리털을 번뜩이는 햇빛 ,

한 여름 심벌즈를 난타하는 듯 금속성을 내며 찌르릉거리는 햇빛.

가을철 분수의 물줄기를 타고 천천히 걸어 내려오는 햇빛, 한겨울 론 강 골짜기를 따라 살을 에도록 미스트랄 바람이 불 때도

창밖에서 내다보면 언제나 ‘따뜻한 겨울’의 환상을 주는 노랗고 투명한 햇빛,

베란다의 베고니아 꽃 속에 자란자란 고이는 햇빛, 작은 커피 잔 위로 플라타너스 잎새들 사이로 스며 나와

짤랑짤랑 흔들리며 요령 소리를 내는 은빛 반점의 햇빛,

이 모든 햇빛, 이 도시의 문화, 이 도시의 청춘, 이 도시의 행복의 살 속에, 핏속에 들어와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려면

우리는 최초의 낯선 시간들을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

 

 

해질녘, 초록색의 황혼녘, 바닷가에 서면, 눈을 감아야 참으로 보이는 나의 별, 잘 익은 과일 ,

하루에 한 번 익은 지구가 비로소 내 가슴에 깊이깊이 들어앉는다.

내가 그 별 속에 살고, 그 별이 나의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자전을 시작한다.

 

당신은 혹시 보았는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자라나는 그 잘 익은 별을. 혹은 그 넘실거리는 바다를.

그때 나지막이 발음해보라.

“청춘”.

그 말 속에 부는 바람소리가 당신의 영혼에 폭풍을 몰고 올 때까지.

 

 

국화와 칼

 

그 행위나 의견이 아무리 이상한 것일지라도 어떤 인간의 느낌과 사고방식은 그의 경험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사랑일까

 

하지만 사랑에서는 권력이 훨씬 수동적이고 부정적인 정의에 의존하는 것 같다.

사랑에서는 권력이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는 능력으로 간주된다.

 

 

바다의 기별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보편적 죽음이 개별적 죽음을 설명하거나 위로하지는 못한다.

소각로 바닥의 흰 뼈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알았다.

인간은 보편적 죽음 속에서, 그 보편성과는 사소한 관련도 없이 혼자서 죽는 것이다.

모든 죽음은 끝끝내 개별적이다. 다들 죽지만 다들 혼자서 저 자신의 죽음을 죽어야하는 것이다.

죽음은 언어화되지 않고 공유되지 않는다.

 

 

고래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된다. 이것은 인간의 부조리한 행동에 관한 귀납적인 설명이다.

즉 한 인물의 성격이 미리 정해져있어 그 성격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는 행동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대로 패배하기엔 너무나 많은 내일이 남아있다.

 

 

스틱

 

단순한 메시지란 단순한 요약이 아니라 핵심과 간결함의 결합이다.

 

우리의 의도는 사람들에게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그들은 스스로 그런 사실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통계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싶다면 언제나 이 점을 염두에 두라. 통계는 의미를 지니거나 의미를 표현하기 힘들다.

통계는 언제나 ‘관계’를 묘사하는 데 이용되어야 한다. 진정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숫자들 사이의 연관성이다.

 

달리 말해, 사람들은 전기 드릴을 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아이들이 그림을 걸 수 있도록 벽에 뚫린 구멍을 사는 것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배를 건조하고 싶으면 사람들에게 나무를 모아오고 연장을 준비하라고 하는 대신

그들에게 끝없는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 일으켜라.

 

예술 심리학자 루돌프 아른하임의 ‘미술과 시지각’을 보면 “하나의 공간에 나타난 물체는 또 다른 공간을 창출해낸다”고 했다.

즉 수평선이 바라보이는 빈 바다에 오징어잡이 배가 떠 있으면 그로 인해 바다는 더 넓고 다양한 공간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웃음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물을 쏟아내는 건 수도꼭지지만 그 모든 걸 만들어내기 위해선 상수도관을 비롯한 거대한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무엇이나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물은 아무리 가열되더라도 100도가 되지 않으면 끓지 않는 것처럼 어떤 성장은, 어떤 변화는 한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물의 온도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

 

 

여름의 묘약

 

고요와 한가함이 만드는 박명 속의 가벼운 둥지.

‘향기와 같은 이 여린 흔들림’이란 덧문으로 새어드는 노란 빛의 무늬가 내 마음 속에 일으킨 어떤 기억의 파문이다.

내 방은 거의 다 닫은 덧문 뒤로 내리쬐는 오후의 햇빛과 겨루며

파르르 떨 듯이 투명하고 깨지기 쉬운 실내의 서늘함을 지켜주고 있었다.

덧문 사이로 반사된 햇빛은 기를 쓰며 그 노란 날개를 들이밀고는 문살과 유리 사이의 한 구석에 나비처럼 내려앉아

그대로 꼼짝도 하지 않고 머물러 있었다.

 

문학은 삶에 형태와 윤곽을 부여함으로써 우리를 참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왼발이 앞으로 나가고 오른발이 아직 뒤에 있을 때 그 중심에 머무는 몸의 짧은 순간,

전신의 모공을 열어 빨아들이는 세상의 빛과 냄새와 소리와 촉감, 그것이 여행이다.

삶의 옆모습이 보이는 시간이다.

머지않아 해가 기울면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 것이다.

 

간혹 대화를 멈추고 발밑에 아른거리는 그늘과 햇빛의 반점이나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에 시선을 맡기고 있노라면

포도주를 재워둔 양철 그릇 속의 얼음 덩어리가 녹아서 툭하고 주저앉는 소리가 들린다.

 

이 고장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빛과 그늘의 반점 사이로 미풍처럼 흔들리다가 고이고 고였다가는 흐르는

우리들 저마다의 삶의 순간과 순간이다.

그 위에 내려앉는 짧은 여름빛, 그 덧없음이 바로 우리가 행복이라고 부르는 그것이 아닐까.

나비의 날개처럼 가늘게 떨리는 그 빛 위에 마음을 고즈넉하게 부어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라.

그리고 이 세상에 살아있음을 기뻐하라.

나는 순간 속에 풍부하게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

 

나는 행복했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행복을 체험하면서 그것을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 행복한 순간이 과거로 지나가고,

그것을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갑자기(이따금 놀라면서)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닫는 것이다.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삶이란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삶이란 그래도 견뎌야 하는 것이다.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네가 내 옆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아팠다. 네가 보고 싶었다.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네가 보고 싶어서 물결이 쳤다. 네가 보고 싶어서 물속의 햇살은 차랑차랑하였다.

네가 보고 싶어서 나는 살아가고 있었고, 네가 보고 싶어서 나는 살아갈 것이었다.

누군가가 보고 싶어 아파본 적이 있는 이는 알 것이다. 보고 싶은 대상이 옆에 없을 때는 비로소 낯선 세계 속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고 싶은 호기심과 의지가 생긴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네게 가고 싶었다.

 

 

글쓰기를 두려워 말라

 

본질은 다양한 현상들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물이라는 본질이 강과 바다, 그리고 얼음과 눈이라는 다양한 현상들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캐비닛

 

자본주의가 선물한 최고의 유산은 바로 불안이에요. 보험, 증권, 부동산, 주식……. 현대 경제는 불안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알다시피 불안은 숙면의 최고의 적이에요.

 

곰탕 뚝배기에 냉면을 담아오면 그것은 냉면이 아니다. 그것은 잘못 만들어진 곰탕일 뿐이다.

 

 

여덟 단어

 

제가 좋아하는 부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존중해야 하는 것이죠.

단점을 인정하되 그것이 나를 지배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인생에 정석과 같은 교과서는 없습니다. 열심히 살다보면 인생에 어떤 점들이 뿌려질 것이고,

의미 없어 보이던 그 점들이 어느 순간 연결돼서 별이 되는 거예요.

정해진 빛을 따르려 하지 마세요. 우리에겐 오직 각자의 점과 각자의 별이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급변하는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게 있고, 그걸 잡는 게 나의 유일한 돌파구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이건 복잡한 미디어의 시대가 진정성의 시대가 되어버린 겁니다.

이처럼 변화하는 것 속에 변하지 않는 것,

'Everything changes'에서 ’Nothing changes'를 보는 것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게 콘텐츠가 되는 겁니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가리고 있다는 말을 자주합니다. (...) 진짜 알려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궁금해질 겁니다. 그 대상의 본질에 대해서. 그리고 그걸 알기 전에는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위험합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합니다.

 

순간도 마찬가지지요. 어떤 순간에 내가 의미를 부여해주어야 그 순간이 내게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면 나의 삶은 의미 있는 순간의 합이 되는 것이고,

내가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나의 삶은 의미 없는 순간의 합이 되는 것이에요

 

다른 답은 내 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의 인정, 현재에 집중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모든 선택에는 정답과 오답이 공존합니다. 그러니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고민하지 말고 선택을 해봤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옳게 만드는 겁니다. 팁을 하나 드릴게요.

어떤 선택을 하고 그걸 옳게 만드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건 뭐냐, 바로 돌아보지 않는 자세입니다

 

저는 그걸 미시적 우연이고 거시적 필연이라고 보는데 우리 인생사가 거시적 필연이잖아요?

기회가 오는 건 거시적 필연이에요. 나보다 잘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저 친구 잘 나가네, 이것은 미시적 우연이고

내가 실력을 키워 분명히 만나게 되는 기회는 거시적 필연이에요.

 

해방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 그 자리를 해방의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것

 

 

문장 강화

 

한자어든 영자어든 괘념할 필요가 없다. 그 단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자연스럽고 적확한 표현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그 말들은 이미 우리말로 여기고 안심하고 쓸 것이다.

 

슬프든 즐겁든, ‘아름다움’은 서정문이 다른 글에 양보해서는 안 될 생명이다.

 

‘귀뚜라미’라는 제목에서 천하의 가을을 향해 번져나가는 글이라야지,

무작정 ‘가을’이라 대담하게 제목을 붙여가지고 ‘귀뚜라미’로 쫄아드는 글은 소담스럽지 못한 글이다.

 

 

밤은 책이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살고 싶고,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살고 싶다.

 

업적이라는 것이 인생 전체에 걸쳐있는 거시적 기준의 결과물이라면,

행복은 그날그날의 일상을 대하는 미시적 감정과 감각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떨어져서 보면 무척이나 화려해 보이는 삶이라도,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 휘황함이

사실은 격렬한 에너지 소모와 붕괴의 흔적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무거울수록 그리고 뜨거울 수록 더 빨리 땔감을 써버리고 마는 별의 경우에서 보듯,

더 많은 에너지를 태울수록 더 강한 빛이 발산되고, 그에 따라 빛날 수 있는 시간은 더 짧아지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빛은 결코 행복의 증거가 아닙니다

 

역지사지를 기본으로 한 충고가 있어야 할 곳은 당연히 충고 받는 사람이 서있는 그 자리이거나 바로 옆자리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충고는 그 자리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올라서 있습니다. (...)

도움을 준다는 미명 하에 행해지는 따뜻한 충고 뒤에 일렁이는 것은 종종 비릿한 우월감입니다.

 

순수는 분명 고귀한 가치입니다. 그러나 순수에의 확신과 순수로의 강요는 위험합니다.

일체의 뒤섞임이나 소통을 거부한 채 순도 100퍼센트를 지향하는 근본주의적 태도에는 항상 불길한 그림자가 일렁입니다.

 

이 세상에 그 자체로 선한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저 선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죠.

결국 선이라는 것은 선하려는 의지를 일컫는 말일 뿐입니다.

 

 

파리는 깊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세 개의 사과가 있다. 첫 번째는 이브의 사과, 두 번째가 뉴턴의 사과,

마지막 세 번째가 바로 세잔의 사과이다. 인간의 삶과 과학, 예술이 사과 한 개로 대변혁을 이룬 것이다.

 

 

밤이 선생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 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삶이 그 내부에서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밖에서 생산된 기호로 그것을 대신할 수밖에 없다.

가지가지 유행이 밖에서 생산된 바로 그 기호다.

밖에서 기호를 구해 의미의 자리를 메울 때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아야한다.

밖의 기호 속에는 스스로 확신할 수 있는 진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행의 문화는 열등감의 문화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놓인다.

 

 

멋진 신세계

 

"나는 그냥 나대로 있고 싶습니다. 울적한 나대로가 좋습니다. 아무리 즐거울지라도 타인이 되고 싶진 않습니다.“

 

 

은교

 

노인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젊은 너희가 가진 아름다움이 자연이듯이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해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

 

 

손자병법

 

장수는 전선에서 필승의 확신이 서면, 군주가 싸우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더라도 반드시 싸워야 한다.

그리고 필승의 확신이 서지 않으면 군주가 싸우라는 명령을 내렸더라도 반드시 싸우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장수는 승리하면서도 명예를 좇아가지 않으며, 패배할 때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출처: 도탁스 (DOTAX) 원문보기 글쓴이: 비오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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